4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이미지
  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 고통과 실패, 심지어 죽음을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다 고 말씀하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1. 세상의 기준과 다른 하나님의 길 세상은 힘 있고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하셨는데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 를 기꺼이 지심으로 연약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그토록 낮아지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어요. 2. 죄와 죽음을 이긴 하나님의 전략 십자가는 단순한 사형 도구가 아니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고 , 그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 입니다. 게다가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유일한 구원자 가 되셨지요. 그렇기에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 이 되었어요. 3. 사람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는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누가 고통과 죽음을 통해 생명을 준다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리석어 보이는’ 길을 통해 참된 지혜와 능력 이 무엇인지 드러내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바로 그 십자가가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회복시키는 은혜의 능력 이 됩니다. 4. 오늘도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죠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죄가 얼마나 무겁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말이에요. ...

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이미지
  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 고통과 실패, 심지어 죽음을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다 고 말씀하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1. 세상의 기준과 다른 하나님의 길 세상은 힘 있고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하셨는데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 를 기꺼이 지심으로 연약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그토록 낮아지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어요. 2. 죄와 죽음을 이긴 하나님의 전략 십자가는 단순한 사형 도구가 아니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고 , 그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 입니다. 게다가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유일한 구원자 가 되셨지요. 그렇기에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 이 되었어요. 3. 사람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는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누가 고통과 죽음을 통해 생명을 준다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리석어 보이는’ 길을 통해 참된 지혜와 능력 이 무엇인지 드러내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바로 그 십자가가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회복시키는 은혜의 능력 이 됩니다. 4. 오늘도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죠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죄가 얼마나 무겁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말이에요. ...

사랑, 소망, 용서는 더 이상 세상의 트렌드가 아닌가요?

이미지
  사랑, 소망, 용서는 더 이상 세상의 트렌드가 아닌가요? 한때는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요, 요즘은 그런 말조차 낯설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어요. 소망, 용서, 사랑 이라는 단어들이 이제는 마치 시대에 뒤처진 말처럼 취급되는 게 현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 “사랑이 밥 먹여줘?” 안타깝게도 사랑, 소망, 용서는 이제 이상적인 말로만 들릴 뿐 사랑을 이야기하면 순진하다고 비웃는 세상 누군가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려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하곤 하죠. “그런다고 뭐가 바뀌니? 바보처럼 굴지 마.” 사랑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고요, 이기심과 계산적인 관계만이 ‘현명한 선택’이라 여겨지는 풍조 소망을 이야기하면 현실을 모른다고 해요 “희망을 가지세요.” 이 한 마디조차 요즘엔 진정성이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삶이 너무 고되고,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보니 , 소망조차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소망은 단지 미래를 위한 기대가 아니에요. 소망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며, 영혼을 붙잡아주는 닻과도 같은 존재 랍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의 표현이에요 누군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다고 하면,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걸 그냥 넘어가? 너만 손해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 무거워지죠. 하지만 성경은 말씀해요. “너희가 사람의 죄를 사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하시리라.” (마 6:14) 용서는 가장 깊은 상처를 품고도 회복을 선택하는, 성숙한 사랑의 표현 사랑, 소망, 용서… 정말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이 세상은 지금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사랑과 용서, 그리고 소망...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이미지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실일까요? 그저 이야기 속 전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도마 사건'은 부활의 실재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장면 이라 할 수 있어요. 도마, 의심으로 가득했던 제자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했을 때 이렇게 말했죠. "내가 그분의 손에 못자국을 직접 보고, 손가락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습니다." (요 20:25) 이 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당시 모든 이들이 품고 있었던 회의와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 이기도 했어요. 우리 역시 삶 속에서 부활을 진심으로 믿기 어려운 순간이 있잖아요? 8일 후,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셨어요 도마가 그렇게 말한 지 8일이 지난 어느 날,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그분은 도마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거라." (요 20:27) 그 순간, 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의심하던 도마의 변화, 그것이 진짜 증거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지고 나서야 확신하게 되었죠. 이 사실은 그 어떤 이론이나 논증보다도 부활이 실제임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약속이에요. 도...

부활의 아침,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네가 이것을 믿느냐?”

이미지
   부활의 아침,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네가 이것을 믿느냐?” 잔잔한 새벽 공기가 감도는 고요한 아침, 이 땅은 아직 잠들어 있는 듯 보이는데요. 그러나 하늘에서는 이미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덤을 여시고 생명으로 나아오신 그날 이 바로 오늘, 부활의 아침 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이 질문은 지금, 당신에게도 던져지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이 말씀은 단지 위로의 말씀이 아니었어요. 그분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영혼을 향해 똑같이 물으시는 거예요. “너는 정말, 내가 생명이자 부활임을 믿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죠. 이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있어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을 너는 믿느냐?” 그 질문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한 초대일 겁니다. ■ 부활은 단지 기념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능력이에요 부활절은 한 주간의 절기를 넘어, 모든 믿는 자의 인생을 바꿔놓은 출발점 이 되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고, 죽음 이후의 소망이에요. 그리고 이 부활은 신화가 아니에요. 역사적 사실로 수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죠. 로마 병사들의 감시, 무덤의 인봉, 제자들의 담대한 변화와 수백 명의 증언들… 이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재했음을 확증하는 증거 ■ 중립은 없습니다 – 믿음은 선택이며 고백이에요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머뭇거릴 수 없어요. 주님의 부활 앞에 중립은 없기 때문이죠.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삶 전체로 고백하는 결단이에요. 지금도...

은혜스러운 5월 주일 대표기도문

이미지
  은혜스러운 5월 주일 대표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넘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신록이 푸르게 짙어지는 5월의 주일, 저희 삶 속에 평안을 부어주시고, 이렇게 주님의 전에 나아오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려요. 오늘 이 자리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인 우리의 심령을 받아주시고, 드리는 이 예배가 하늘 보좌에 향기처럼 올려지는 기쁨의 제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선하신 손길로 저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각자 처소에서 삶의 예배를 드리며 살아오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음에 더욱 감격이 일어요. 알게 모르게 범한 죄들을 자백하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저희를 위해 일하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시련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사랑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배가 더욱 충만하고 깊은 은혜가 흐르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준비된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게 하시고, 그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처럼 뿌려지게 해주세요. 굳어 있던 마음이 말씀 앞에 무너지게 하시고, 회복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 마음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들에게 주님 친히 찾아가 주시고, 회복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세요. 그들의 아픔 위에 주님의 손이 닿게 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낙심한 자들과 지쳐 있는 영혼들도 주님 기억해 주세요. 기도할 힘조차 없이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 들리게 하시고, 그 마음속에 소망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이미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에요.”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절절한 외침이었는데요. 그 시대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이들이 여전히 있죠. 그렇다면 정말로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 ■ 모든 믿음이 헛것이 된다면요? 수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이유는 뭘까요?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소망 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국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도 상관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겠지요. 십자가에서의 희생도, 눈물의 중보기도도, 복음을 위해 흘린 땀방울도… 죽음 앞에서 끝나버리는 인생 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 바울이 던진 가슴 저린 한마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19절 이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절규 같은 고백 이에요. 부활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견디고 이겨낸 모든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자 생명이에요. ■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우려가 가정일 뿐이라는 사실이에요. 예수님은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사실은 단지 몇 명의 환상이 아니라, 수많은 증인들이 함께 확인한 역사적 사건이에요.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제자들, 그리고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기록은 부활이 단지 믿음의 이야기만이 아닌 실제 사건임을 증명해주는 것 입니다. ...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이미지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 질문은요, 우리 믿음의 뿌리를 되짚게 만드는 아주 깊고 중요한 물음이에요. 오늘은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복음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해보면 좋겠어요. ■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셨어요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을 보면요, “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말씀이 나와요. 이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인간을 창조하신 장면인데요, 그 중 성자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셨고, 그분은 바로 말씀이신 하나님 이셨어요. ■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배고픔도 느끼시고 눈물도 흘리실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에요. ■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종의 형체로 낮아지셨어요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셨는데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우고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왜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에요. 죄의 삯은 죽음 인데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그 죽음을 감당하신 거죠. ■ 예수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쳤던 말, 기억하시나요? ...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이미지
 "Jesus was 100% God and at the same time 100% human."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100% 인간이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요, 단순한 신학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은혜의 복음**이에요. 특히 고난주간을 지나는 지금,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 하나님이신 주님,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 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는데요, 한 아기로 나셔서 연약한 인간의 삶을 직접 살아가셨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그분은 기적을 행하신 주님이셨지만, 배고픔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경험하셨던 진짜 사람 이셨어요. ■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신 그분의 고난 예수님은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잖아요? 하지만 우리를 위해 스스로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신 거예요. 그분은 모든 고통을 외면하실 수도 있었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선택하셨어요. 밤새 재판을 받고, 채찍에 맞고,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시고… 그 고통은 실제였고, 그 아픔은 우리를 향한 진심이었답니다. ■ 왜 그토록 아픈 길을 걸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예요. 바로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이 진리는 정말 감동이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고난주간을 보내며, 그 사랑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면 어떨까요? ■ 사람이셨기에 대신하셨고, 하나님이셨기에 구원하셨어요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 우리의 죄를 대신 지...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님 [고난주간]

이미지
  [고난주간]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님 "이 땅에서 예수님만큼, 영과 혼과 육으로 고통받으신 분이 또 있을까요?"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향한 사랑의 깊이 를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고난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어요. 주님은 우리의 질병과 죄악, 외로움과 버림받음 까지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이사야 53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은 죄 없으셨지만, 죄인인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셨어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감당하신 거죠.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셨습니다 .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 제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상실, 육체의 고통을 넘는 심령의 짓눌림 까지 경험하셨어요.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신 분”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오셔서 굶주림을 경험하셨고, 눈물을 흘리셨고,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외침 속에는 절대 고독 과 우리 모두의 슬픔 이 담겨 있었어요.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기억하신 사랑 주님은 자신을 조롱하는 무리 앞에서 침묵하셨지만, 옆에 있는 강도에게는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통의 와중에도 한 영혼을 살피시는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변하지 않는 언약 이자 영원한 위로 예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 고난주간은 단지 한 주간의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사랑 앞에 무릎 꿇는 시간 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치르신 값,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는 은혜의 주간이죠. “주님, 저의 질고를 대신 지신 그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천국을 생각하며 오늘을 준비해보세요

이미지
  천국을 생각하며 오늘을 준비해보세요 우리는 매일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이 세상의 일에 휩쓸려 영원한 삶의 목적지 를 잊어버릴 때가 참 많죠.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우리가 가야 할 진짜 본향 지금 여기서부터 준비되는 삶의 연속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의 처소 분명하고 실제적인 약속 하늘나라 백성답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오늘 하루에도 ‘영원’을 담아보는 거예요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작은 선택 하늘에 쌓이는 보물 “영원을 소망하며 걷는 여정”감사와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속에 영원을 담는것은 늘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자는것이요, 그 곳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님이 언제나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2. 천국은 ‘준비된 자’의 집이에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등불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으로 미리 준비되어야 해요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3. 천국 소망은 고난의 시간도 견디게 해줘요 이 세상의 고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면, 아픔 속에서도 위로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소망의 눈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잠시 머물다가는 고향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정이랑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나그네 이요, 천국을 향한 순례자 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집, 그것은 ‘천국’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본향 우리가 영원히 거할 집은 하늘나라 눈물도 없고, 아픔도 사라지며, 죽음조차 끝나는 곳, 본향이 진짜 영원히 거할 처소 입니다. 그 곳에는 주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믿음의 선배들, 예수 잘 믿었던 사랑하는가족,친지,친구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천국  #소망  #믿음&nbsp...

[복음의 초대]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미지
  [복음의 초대]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은 끝이 있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 단 한 번뿐인 기회 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 입니다. ■ 죽음 이후엔 선택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존재는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고 나서야 “예수 믿을 걸...” 하고 후회해도,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 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믿을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졌습니다. ■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은혜의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가장 확실한 구원의 시간입니다. ■ 믿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절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자 되심을 믿는 것 ,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 만약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만일 오늘 밤, 당신이 마지막 숨을 내쉰다면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어두움과 유황불이 있는 심판의 장소 였다면… 그땐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직 숨 쉬고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믿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복음의초대 #지금이기회 #예수믿으세요 #구...

[믿음의 묵상] 고향과 본향, 그 차이를 아시나요?

이미지
  [믿음의 묵상] 고향과 본향, 그 차이를 아시나요?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고향’ 을 찾습니다. 어릴 적 추억이 있고, 부모님이 계셨던 곳, 아직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그곳. 하지만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본향(本鄕)’ 을 이야기합니다. ■ 고향은 잠시 머무는 땅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웃고 울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곳이 우리가 말하는 고향 이죠.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말합니다. “저희가 나그네와 행인이라 증거하며 본향을 사모하였도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임시 숙소 로 여겼습니다. 고향은 아름답지만, 결코 영원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 본향은 우리가 돌아갈 영원한 집 본향은 천국 입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난 후, 주님께서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 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이렇게 말하죠.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하늘나라**라는 사실입니다. ■ 믿음의 선진들도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약속의 땅에 거했지만 여전히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며 “더 나은 도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성”을 바라보았고, 죽음 앞에서도 본향에 대한 소망 을 놓지 않았습니다. ■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우리는 때로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집을 사고, 돈을 벌고, 지위를 쌓으며 안주하려 하죠. 그러나 기억하세요. 이 세상은 영원의 시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고, 그곳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평안 이 있습니다. ■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히브리서 11장 16절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

[고난주간 묵상] 내 안의 속사람과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

이미지
  [고난주간 묵상] 내 안의 속사람과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 믿음의 여정을 걷다 보면 외적인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속사람’의 상태 입니다.   고난주간은 단순히 외적으로 거룩해 보이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이 예수님과 진실하게 교제하는 은혜의 시간 이 되어야 합니다. ■ 속사람이란 무엇인가요? 성경은 우리 안에 ‘겉사람’과 ‘속사람’ 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겉사람은 보이는 육체의 모습이고, 속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혼의 자리 입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하죠.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그리스도는 내 속사람과 교제하시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단지 내 입술의 고백이나, 겉으로 드러난 신앙행위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나의 마음 깊은 곳, 내 속사람과 함께 걷고 싶어하십니다. 계시록 3:20에서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하셨죠.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리라.” 그것이 바로 **속사람과의 교제**입니다. ■ 속사람이 강건해질 때, 외적 신앙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 말씀을 잊고, 기도를 건너뛰고, 마음이 지칠 때, 속사람이 약해지고 메마르게 됩니다. 하지만 말씀과 기도로 그 속사람이 살아날 때, 외적인 상황이 아무리 흔들려도 **신앙은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 속사람의 부활을 경험하세요 고난주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주님, 제 속사람을 다시 일으켜주세요”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육신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까지 살리는 생명입니다. 속사람이 살아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다시 감동하고, 기도 중에 주님과 진짜 대화하게 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그리스도가 되셔서 내 안에 사심으로 속사...

예수님의 부활은 죄사함의 확실ㄴ

이미지
  [부활묵상] 예수님의 부활은 죄사함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말 용서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죄책감, 후회, 부끄러움 속에 가려진 마음은 쉽게 자유를 누리지 못하죠.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은 단순한 기적이나 종교적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분의 부활은 **내 죄가 온전히 사함받았다는 확실한 ‘하나님의 서명’**이에요. ■ 십자가 죽음,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부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며 운명하셨을 때, 그 장면은 끝이 아니라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의 완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분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는 어떻게 죄사함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의 부활 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너의 죄가 사해졌다”는 하나님의 공적인 선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 부활은 하나님의 인치심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셨다는 영원한 증거**입니다. ■ 죄사함은 이제 과거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죄인으로 남아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 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지난 죄와 실패, 수치감은 더 이상 우리를 묶어둘 수 없어요. ■ 당신도 그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나는 ‘회복의 능력’ 입니다. 당신이 그 부활을 믿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당신을 의롭다 부르십니다. 이미 용서하셨다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 앞에서 조용히 고백해 보세요.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내 죄는 이미 사...

옛 성품은 죽고, 예수님으로 다시 살아나다

이미지
  [고난주간 묵상] 옛 성품은 죽고, 예수님으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에요 고난주간은 단지 예수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주간이 아니에요. 사실은 내 안의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으로 다시 사는 회개의 시간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자아를 내려놓고 변화되기로 결단해야 할 때예요. ● 옛 성품, 정말 죽어야 할까요? 예배는 드리지만 여전히 마음속엔 시기와 질투, 미움과 교만 이 살아있을 때가 많지요. 이런 감정과 태도가 바로 '옛 성품', 즉 죄로 오염된 옛사람의 흔적 이에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믿는 자는 옛 모습을 벗고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삶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이 말씀은 그냥 암송 구절이 아니에요. 실제로 내 자아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기를 소망하는 믿음의 고백 이죠. 이 고난주간은 나의 자아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에요. 내가 낮아질수록, 예수님은 내 삶의 왕으로 자리잡으십니다. ● 말씀 앞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돼요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면, 말씀과 기도 없이 지나치는 날도 많죠. 하지만 이 고난주간만큼은 잠시 멈추고, 말씀 앞에 가만히 머물러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불 같고 칼 같아서, 내 속 깊은 곳까지 찔러 쪼개고 회복시키는 능력 이 있어요. 그 말씀이 나를 새롭게 빚으시고, 옛 성품을 태워 없애 주시는 거예요. ● 매일 죽는 훈련, 이것이 믿음의 루틴이에요 한 번 뜨겁게 눈물 흘렸다고 변화가 완성되는 건 아니에요.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는 삶 이 쌓여야 ...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