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소망, 용서는 더 이상 세상의 트렌드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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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소망, 용서는 더 이상 세상의 트렌드가 아닌가요? 한때는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요, 요즘은 그런 말조차 낯설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어요. 소망, 용서, 사랑 이라는 단어들이 이제는 마치 시대에 뒤처진 말처럼 취급되는 게 현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 “사랑이 밥 먹여줘?” 안타깝게도 사랑, 소망, 용서는 이제 이상적인 말로만 들릴 뿐 사랑을 이야기하면 순진하다고 비웃는 세상 누군가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려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하곤 하죠. “그런다고 뭐가 바뀌니? 바보처럼 굴지 마.” 사랑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고요, 이기심과 계산적인 관계만이 ‘현명한 선택’이라 여겨지는 풍조 소망을 이야기하면 현실을 모른다고 해요 “희망을 가지세요.” 이 한 마디조차 요즘엔 진정성이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삶이 너무 고되고,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보니 , 소망조차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소망은 단지 미래를 위한 기대가 아니에요. 소망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며, 영혼을 붙잡아주는 닻과도 같은 존재 랍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의 표현이에요 누군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다고 하면,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걸 그냥 넘어가? 너만 손해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 무거워지죠. 하지만 성경은 말씀해요. “너희가 사람의 죄를 사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하시리라.” (마 6:14) 용서는 가장 깊은 상처를 품고도 회복을 선택하는, 성숙한 사랑의 표현 사랑, 소망, 용서… 정말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이 세상은 지금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사랑과 용서, 그리고 소망...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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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실일까요? 그저 이야기 속 전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도마 사건'은 부활의 실재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장면 이라 할 수 있어요. 도마, 의심으로 가득했던 제자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했을 때 이렇게 말했죠. "내가 그분의 손에 못자국을 직접 보고, 손가락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습니다." (요 20:25) 이 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당시 모든 이들이 품고 있었던 회의와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 이기도 했어요. 우리 역시 삶 속에서 부활을 진심으로 믿기 어려운 순간이 있잖아요? 8일 후,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셨어요 도마가 그렇게 말한 지 8일이 지난 어느 날,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그분은 도마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거라." (요 20:27) 그 순간, 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의심하던 도마의 변화, 그것이 진짜 증거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지고 나서야 확신하게 되었죠. 이 사실은 그 어떤 이론이나 논증보다도 부활이 실제임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약속이에요. 도...

부활의 아침,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네가 이것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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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아침,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 “네가 이것을 믿느냐?” 잔잔한 새벽 공기가 감도는 고요한 아침, 이 땅은 아직 잠들어 있는 듯 보이는데요. 그러나 하늘에서는 이미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덤을 여시고 생명으로 나아오신 그날 이 바로 오늘, 부활의 아침 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이 질문은 지금, 당신에게도 던져지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이 말씀은 단지 위로의 말씀이 아니었어요. 그분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영혼을 향해 똑같이 물으시는 거예요. “너는 정말, 내가 생명이자 부활임을 믿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죠. 이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있어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을 너는 믿느냐?” 그 질문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한 초대일 겁니다. ■ 부활은 단지 기념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능력이에요 부활절은 한 주간의 절기를 넘어, 모든 믿는 자의 인생을 바꿔놓은 출발점 이 되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고, 죽음 이후의 소망이에요. 그리고 이 부활은 신화가 아니에요. 역사적 사실로 수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죠. 로마 병사들의 감시, 무덤의 인봉, 제자들의 담대한 변화와 수백 명의 증언들… 이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재했음을 확증하는 증거 ■ 중립은 없습니다 – 믿음은 선택이며 고백이에요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머뭇거릴 수 없어요. 주님의 부활 앞에 중립은 없기 때문이죠.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삶 전체로 고백하는 결단이에요. 지금도...

은혜스러운 5월 주일 대표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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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스러운 5월 주일 대표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넘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신록이 푸르게 짙어지는 5월의 주일, 저희 삶 속에 평안을 부어주시고, 이렇게 주님의 전에 나아오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려요. 오늘 이 자리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인 우리의 심령을 받아주시고, 드리는 이 예배가 하늘 보좌에 향기처럼 올려지는 기쁨의 제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선하신 손길로 저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각자 처소에서 삶의 예배를 드리며 살아오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음에 더욱 감격이 일어요. 알게 모르게 범한 죄들을 자백하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저희를 위해 일하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시련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사랑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배가 더욱 충만하고 깊은 은혜가 흐르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준비된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게 하시고, 그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처럼 뿌려지게 해주세요. 굳어 있던 마음이 말씀 앞에 무너지게 하시고, 회복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 마음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들에게 주님 친히 찾아가 주시고, 회복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세요. 그들의 아픔 위에 주님의 손이 닿게 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낙심한 자들과 지쳐 있는 영혼들도 주님 기억해 주세요. 기도할 힘조차 없이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 들리게 하시고, 그 마음속에 소망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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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에요.”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절절한 외침이었는데요. 그 시대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이들이 여전히 있죠. 그렇다면 정말로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 ■ 모든 믿음이 헛것이 된다면요? 수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이유는 뭘까요?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소망 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국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도 상관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겠지요. 십자가에서의 희생도, 눈물의 중보기도도, 복음을 위해 흘린 땀방울도… 죽음 앞에서 끝나버리는 인생 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 바울이 던진 가슴 저린 한마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19절 이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절규 같은 고백 이에요. 부활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견디고 이겨낸 모든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자 생명이에요. ■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우려가 가정일 뿐이라는 사실이에요. 예수님은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사실은 단지 몇 명의 환상이 아니라, 수많은 증인들이 함께 확인한 역사적 사건이에요.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제자들, 그리고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기록은 부활이 단지 믿음의 이야기만이 아닌 실제 사건임을 증명해주는 것 입니다. ...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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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 질문은요, 우리 믿음의 뿌리를 되짚게 만드는 아주 깊고 중요한 물음이에요. 오늘은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복음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해보면 좋겠어요. ■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셨어요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을 보면요, “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말씀이 나와요. 이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인간을 창조하신 장면인데요, 그 중 성자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셨고, 그분은 바로 말씀이신 하나님 이셨어요. ■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배고픔도 느끼시고 눈물도 흘리실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에요. ■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종의 형체로 낮아지셨어요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셨는데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우고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왜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에요. 죄의 삯은 죽음 인데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그 죽음을 감당하신 거죠. ■ 예수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쳤던 말, 기억하시나요? ...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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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us was 100% God and at the same time 100% human."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100% 인간이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요, 단순한 신학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은혜의 복음**이에요. 특히 고난주간을 지나는 지금,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 하나님이신 주님,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 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는데요, 한 아기로 나셔서 연약한 인간의 삶을 직접 살아가셨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그분은 기적을 행하신 주님이셨지만, 배고픔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경험하셨던 진짜 사람 이셨어요. ■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신 그분의 고난 예수님은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잖아요? 하지만 우리를 위해 스스로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신 거예요. 그분은 모든 고통을 외면하실 수도 있었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선택하셨어요. 밤새 재판을 받고, 채찍에 맞고,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시고… 그 고통은 실제였고, 그 아픔은 우리를 향한 진심이었답니다. ■ 왜 그토록 아픈 길을 걸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예요. 바로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이 진리는 정말 감동이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고난주간을 보내며, 그 사랑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면 어떨까요? ■ 사람이셨기에 대신하셨고, 하나님이셨기에 구원하셨어요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 우리의 죄를 대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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